독립문은 개화기 시절...
청나라와의 사대관계를 상징하던 영은문을 헐고
독립의지를 위해 다시 세운 문이죠
이것이 우리가 국사 시간에 배운 독립문의 내용이기도 해요..
처음엔 이런 내용만 생각하고 갔다 왔는데...
알고보니 독립문에 대한 여러가지 논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립문은 이렇게 도로 옆에 우뚝 서있었어요.
독립문의 앞모습이에요
한글로 독립문이라 써져 있고
그 앞에는 헐린 영은문의 초석이 상징적으로 남아있어요..
독립문 안쪽의 정상으로 올라가는 돌층계 출입문과 천장의 모습이에요..
독립문 뒷모습이에요.
한자로 독립문이라 써져 있어요..
이 글씨를 이완용이 썼다고 전해지죠..
당시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기 전, 독립문을 세우는데 일조했었다고 해요
아이러니한 역사죠..
또한 독립문은 1979년 성산대로 공사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졌다고 해요...
문화유산을 외적인 공사 하나로 옮겼다는것은
당시에 얼마나 역사의식이 무지했는가를 알려주는 대목이죠..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요..
독립문을 세우는데 중심에 있었던 서재필의 동상이에요
서재필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죠..
우리가 알고있는 그는 이렇습니다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번 전재산으로 독립자금을 대느라 빈털털이가 된 독립운동가..
하지만 이건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일 뿐이고..
다른 여러 자료와 정황을 보면 일부분은 다르다고 해요..
즉, 독립자금을 댄건 사실이지만 전재산을 내놓지는 않았으며(빈털털이가 된건 독립자금때문이 아니에요)
오히려 대한제국 시절 어려운 조국의 사정을 알면서도 많은 돈을 요구해서 받아냈다고 해요..
또한, 독립운동을 일부 한건 맞지만, 독립신문을 일제에 넘길려고 하는등 친일적인 면모도 보였다고 하죠.. 그리고 죽을때까지 철저하게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으로 살았다고 해요..
어쩌면 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을 바라봤기 때문에 독립과 친일에 구분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독립문 뒷쪽에는 3.1운동기념비가 있어요
이것도 논란이 될수 있는데요..
원래 독립문은 일제에 대한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청나라에 대한 독립을 의미해요
독립문이 세워질 당시에는 조선이 청나라의 영향력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겠죠..
그래서 일제강점기때에도 일제는 독립문을 헐지 않고 오히려 보호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거죠..
다시 말해, 일제에 항거했던 3.1운동과 청나라에 대한 독립의지였던 독립문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둘이 같이 있다는 것은 자칫 독립문을 일제의 대한 독립으로 보게 되어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거죠..
독립관의 모습이에요
중국사신을 맞던 모화관을 개수했다고 해요
지금은 순국선열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요
순국선열추념탑이에요
독립관 뒷쪽에 세워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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